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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 자살보험금청구와 소멸시효

2019-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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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해사망보험이란 보험가입자가 예기치 못한 사고(재해)로 사망한 경우 보험금을 받을 수 있는 방식의 보험이다. 그렇다면 보험가입자가 자살했을 때도 보험금을 받을 수 있을까?

 

2001년 동아생명(현 KDB생명)이 보험계약자가 자살해도 보험 가입 뒤 2년이 지났다면 재해사망보험금을 받을 수 있다는 약관의 재해사망특약 보험상품을 출시했고, 다른 생보사들도 이 약관을 그대로 적용한 상품들을 쏟아냈다. 하지만 위 약관에도 불구하고 보험사들이 자살한 가입자에 대한 사망보험금을 제대로 지급하지 않는 사례가 많았고, 이에 대한 법적 분쟁도 많아졌다.

 

이 분쟁에서 보험사는 약관규정이 잘못되어 보험금지급의무 자체가 없다는 점, 유효하더라도 보험금 청구권의 소멸시효가 지났다는 점을 주장했고, 가입자들은 약관이 유효하며 보험사의 소멸시효 주장은 권리남용이라고 주장하며 팽팽하게 맞섰고, 이에 관한 여러 판례가 난립하여 혼선이 발생했다.

 

그러던 2016년 5월 대법원은, 보험약관에 따라 자살도 재해사망으로 인정하여 혼선을 정리하였다. 다만 대법원은 2016년 9월, 교보생명의 사망보험금 관련 소송에서 보험사의 소멸시효 주장을 권리남용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이에 보험가입자들은 보험금청구권을 인정받았음에도 소멸시효 도과로 보험금을 지급받지 못할 상황에 놓였다.
 
그러나 금융감독원은 보험사에 소멸시효와 관계없이 보험금을 전액 지급하라고 요구했고, 영업정지 등 중징계를 예고하면서 분쟁이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결국, 많은 보험사가 백기를 들고 소멸시효가 지난 보험금까지도 지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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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법은 일정 기간이 지나면 권리를 행사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는데, 이를 소멸시효라 한다. 원래 보험금청구권의 소멸시효는 2년이었는데, 2014년 상법 제662조가 “보험금청구권은 3년간, 보험료 또는 적립금의 반환청구권은 3년간, 보험료청구권은 2년간 행사하지 아니하면 시효의 완성으로 소멸한다.”라고 개정되었다. 따라서 현재 보험금 청구권의 소멸시효는 3년이다.

 

민법 제2조는 권리의 행사와 의무의 이행은 신의에 쫓아 성실히 하여야 하고, 권리는 남용하지 못한다고 하며 신의성실의 원칙과 권리남용 금지의 원칙을 세우고 있다.

 

한편 계약의 한쪽 당사자가 여러 명의 상대방과 계약을 체결하기 위하여 일정한 형식으로 미리 마련한 계약의 내용을 ‘약관’이라고 하는데, 약관의 규제에 관한 법률(약관규제법) 제5조는, 약관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따라 공정하게 해석되어야 하며 고객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어서는 아니 되고, 약관의 뜻이 명백하지 아니한 경우에는 고객에게 유리하게 해석되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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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사건의 가장 첫 번째 쟁점은, 자살이 ‘재해사망’에 해당하는지 아닌지다. 보험이란 원래 예상치 못한 사고 위험을 대비하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임을 생각할 때, 원칙적으로는 자살을 재해로 인정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자살은 유족으로서는 충분히 사고일 수 있지만, 망인이 고의로 유발한 사망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살을 재해사망으로 보는 특약이 약관에 규정되어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이는 두 법률당사자 사이의 엄연한 계약이기 때문이다. 보험사는 이를 다른 상품의 약관을 그대로 가져오며 생긴 약관 내용상의 오류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보험약관은 고객보다 풍부한 정보와 전문성을 갖춘 보험사가 일방적으로 작성해둔 것이다. 정보 비대칭성 때문에 사업자보다 상대적으로 약자인 고객을 보호하려고 도입된 약관규제법의 취지를 고려하면, 직접 작성한 약관에 특약이 있었던 이상 보험사는 그 약관의 효력을 부정해서는 안 된다.

 

대법원 역시 2016년 5월, “고의에 의한 자살 또는 자해는 원칙적으로 재해사망특약의 보험사고인 재해에 해당하지 않지만, 예외적으로 단서에서 정하는 요건에 해당하면 이를 보험사고에 포함시켜 보험금 지급 사유로 본다.”라고 판시하였다.

 

그런데 이러한 경우라도, 보험금 지급 청구권은 소멸시효기간 내에 행사되어야 한다고 본다. 대법원에 따르면, 소멸시효 제도는 법률관계의 주장에 일정한 시간적 한계를 설정함으로써 그에 관한 당사자 사이의 다툼을 종식하기 위해 존재한다. 즉, 소멸시효는 누구에게나 무차별적·객관적으로 공평하게 적용되는 ‘시간’의 경과를 조건으로 하도록 설계된 것이다. 따라서 자살사고가 재해사망으로 인정되어도, 권리 위에 잠자는 자를 보호하지 않는다는 법적 안정성 원칙에 따라 소멸시효가 지나면 보험금 청구권은 사라져야 마땅하다.

 

이에 대해 보험계약자는 보험사의 소멸시효 완성 주장이 권리남용이라고 항변했다. 하지만 2016년 9월 대법원은, 현저히 부당하거나 불공평하게 되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채무자가 소멸시효의 완성을 주장하는 것이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여 권리남용으로서 허용될 수 없는 것이 맞지만, 해당 보험사의 소멸시효 항변은 정당하다고 판단하여 보험사의 손을 들어주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금감원 등 금융당국은 대법원의 판결에도 불구하고 보험금을 전액 지급하라고 보험사에 요구했다. 영업정지 등 중징계까지 예고한 금감원의 으름장에 주요 보험사들은 눈물을 머금고 소멸시효가 지난 보험금까지도 지급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약관을 믿고 가입한 계약자들의 사정을 헤아린 금감원의 조치도 일견 타당한 부분이 있다. 하지만 달리 보면, 이로 인해 보험사가 지급한 막대한 보험금은 결국 오랜 기간 보험금을 낸 일반 보험가입자의 주머니에서 나온 것이다. 실제로 보험사들은 소멸시효가 지난 보험금을 지급하는 행위가 업무상 배임의 소지가 있다고 호소하였다. 과연 이 결과가 정의로운 것인지는 의문이다.

 

게다가 이는 삼권분립 제도에 따라 사법부의 정점인 대법원의 판단에 행정부의 한 조직인 금감원이 정면으로 제동을 건 행위다. 법률에 명문으로 규정된 제약을 이처럼 행정부에서 자의적으로 해석한다면, 보험사는 물론 보험에 가입하려는 일반 국민도 혼란에 휩싸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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